본문 바로가기

A&C STORY/Daily

[모듈러가 그리는 세상] 두번째 이야기 : '공장에서 집짓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모듈러시리즈 1탄 “사람을 품다 모듈러 주택”에 이어서 제2탄 “공장에서 집짓기”를 시작해 볼까합니다. 1탄에서는 모듈러에 숨겨진 인체공학적 비례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이번에는 어떻게 공장에서 집을 짓기 시작했는지! 모듈러주택의 탄생 배경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산업혁명의 부작용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통해 식량의 생산량이 증가되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어요. 여기서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을 복습해보면, 산업혁명은 수공업 형태의 1차 산업에서 기계화를 도입한 대량생산체제의 2차 산업으로 양(量)의 성장을 이루어 냈죠. 이러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시대적, 이론적, 이념적 변화도 있지만, 피부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의식주(衣食住)의 변화였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간은 오래전부터 생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의식주라 칭했습니다. 산업혁명은 기계화 된 대량생산 공급체제를 바탕으로 과거보다 식량 생산량은 증가되었고, 섬유업 발달로 인해 입을 것도 풍족해졌답니다. 뜬금없이 산업혁명이니~ 의식주니~ 왜 이야기를 하냐구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해보려 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지속된 성장은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바로 '주택문제'죠. 이제 감 잡으셨겠죠? 당시 유럽은 국가적으로 폭발하는 인구증가를 해결할 수있는 주택보급에 대한 묘책이 필요했던 거죠! 이러한 문제는 당시 건축가들에게는 풀어야 할 미션이기도했구요.

발칙한 예술가들!

포스코A&C의 ‘MUTO’처럼 주택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1920년대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영향력을 가진사조와, 건축가들에 의해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우선 모듈러의 기본이 되는 대량생산과 표준화는 독일식 *아르누보(Art Nouveau, 1890-1910)운동인 유겐트스틸(Jugendstil, Jugend Style, 1907년 창립, 독일공작연맹이라고도 함)을 빼놓고 이야기 하면 무지 섭섭하답니다. 그 당시 공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서 좋은 점도 많지만, 몰 개성화 되는 문제는 해결과제로 남게 되었죠. 유겐트스틸은 예술, 산업, 공예, 상업 등 독일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에 대해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구요. 한마디로 “기계에 의해 대량생산되는 즉물적이고 고상한 유기체 생산에 대하여 우수한 제품을 만들자!” 뭐 이런 취지였다고 합니다. 건축의 대량생산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시점에 유겐트스틸운동 참여자들에 의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 졌답니다. 사실 집을 대량생산 하겠다는 생각은 획기적이고, 매우 발칙한 생각 이였던거죠!

 

*여기서 잠깐! '아르누보'란?(Art Nouveau,1890-1910)

독일 태생의 화상(華商,화교상인) 지크프리트 빙(Siegfried Bing, 1838~1905)이 1895년 파리에 문을 연 ‘메종 드 아르누보(Maison de l’Art Nouveau, House of New Art)라는 화랑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술계에서는 이 아르누보 운동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관점에서 중요하기도 하구요.“새로운 예술”이란 뜻을 가진 아르누보는 영국, 미국에서의 호칭이고, 프랑스에서는 '기마르양식(Style Guimard)',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Stile Liberty:런던의 백화점 리버티의 이름에서 유래)', 독일에서는 유겐트스틸(Jugendstil, 독일공작연맹)으로 불리고 있구요.유겐트스틸은 유겐트라는 이름의 잡지에 ‘Art Nouveau’나 ‘Art and Craft’ 관련 글이 소개되면서 독일의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사조로 발전했어요.

 

대량생산은 혁명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듈러는 표준화 된 건축모듈을 공장에서 제작, 현장에서 설치, 조립하는 프리패브화 된 공업화 건축이자, 시스템화 된 건축입니다. 즉,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방식이죠. 집에 대한 해석은 관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것 입니다. 건축물은 그 자체가 종교, 이념, 철학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태초 이래 인류가 집을 짓기 시작한 순간부터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현장에 자재를 쌓아놓고 환경을 극복하며 건축했다는 점은 아마도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일과 미국의 아르누보운동에 참여한 몇몇 건축가들이 주택의 대량생산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세월동안 현장에서 축조하던 제작방식에서 벗어나,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은 “건축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는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포스코A&C 천안모듈러공장 모습

연간 3500개의 모듈을 생산할 수 있으며, 지난 2012년 국토해양부에서 공업화 주택인정을 받아

국내는 물론 호주 및 러시아로 모듈러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카닉한 예언자들

당시 아르누보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가이거나 산업디자이너, 건축가였어요. 처음에 이들은 공산품이나 예술품 위주로 관심을 가졌었는데, 건축가이면서 산업디자이너인 독일공작연맹출신의 페터 베런스(peter Behrens, 1868-1940)와 발터 그루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 1983-1969)는 인구증가에 대한 해법으로 주택의 대량생산을 검토하기 시작했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건축가인 리하이트 노이트라(Richard Joseph Neutra, 1892-1970)와 리차드 풀러(RichardBuckminster Fuller, 1895-1983) 역시 공업화를 통한 주택의 대량생산체계 제기하게 되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자동차생산의 개념이 주택산업에 그대로 도입되었고, 패널이나 부품을 근간으로 하는 일명 시스템 건축의 개념을 정립한 것이죠.건축을 전공하신 이 분들에게 어마어마한 건축계의 거장분들이죠. 아주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선배님들이시기도 하구요!

 

특명! 주택의 난(亂)을 진압하라

1940년대 유럽의 근대사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이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건축가였던 르 꼬르뷔지에는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려면 대량생산시스템이 필요하고 이에 사용되는 치수는 보편적인 치수를 사용해야한다“는 이론이 등장하였으며,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Le Modular(1948)라는 저서에 담긴 표준화(Standardization)와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tion)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지속되는 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유럽은 기상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공장에서 집을 제작해서 현장에 조립, 설치하는 방식은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답니다.

결론적으로, 근대 초기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인한 주택문제가 바로 현재의 모듈러건축을 만들어 낸것입니다!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이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죠. 주거 및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모듈러 건축! 가까운

미래에 우리 주거생활에 자리 잡힐 아주 중요한 아이랍니다!

 

모듈러시스템 2탄! 어떻게 보셨나요?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되셨죠? 이미 연재가 된 1탄에도 모듈러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들이 많이 있으니 1탄을 보시지 못한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펀에 진행될 [모듈러가 그리는 세상] '세번째 이야기'에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포스코A&C 공식 블로그'의 모든 댓글과 트랙백은 누구나 자유롭게 남길 수 있습니다. , 욕설, 비속어 사용, 특정대상 비하, 상업성 광고 글, 컨텐츠와 관련 없는 댓글에 대해서는 작성자의 동의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